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스스로도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의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적 통념과는 다른 개념을 제시하는 책이고, 그 상이함에서 오는 불편함이다.
아래의 글을 들어가기전, 해당 내용은 필자 본인의 개인적인 의견임을 알리는 바이다. 아마 이 불편함 때문에 글이 길어진 것 같다.
폴리아모리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견의 있겠지만, 분명 한가지의 사랑의 방법임은 이해한다. 정말 현실에서 누군가 하고 있다면 실재하는 형태의 사랑임이 분명하다.
다만, 왜 인간사회가 폴리아모리가 아닌 모노아모리를 택했는지에 대해서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폴리아모리가 다름 속 틀림의 범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의견을 이야기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훗날 정말 폴리아모리가 하나의 사랑의 방식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먼저 모노아모리에 대해서 서술하고 폴리아모리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폴리아모리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여럿이 가정을 이루는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는 아직 몇몇 국가에서는 실존하는 가정의 방식이며 한국 사회에서 없어진지 100년이 조금 넘었다. 이러한 가정을 이루는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생물학적으로 유리한 가정의 구조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선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 와 같은 해석에 따르면, 사람은 유전자를 옮기는 도구에 불과하고 더 훌륭한 유전자를 후세에 배포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유전자를 가진 대상과 가정을 이루고 살아감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몇몇의 동물들은 하나의 수컷 혹은 암컷이 무리를 이끌기도 한다. 자연의 단면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가정의 형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런 유전자에게 유리한 가정의 방식을 놓아두고, 일부일처제를 지향 했을까? 아마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여서 살아가고 또 그 사회가 가진 복잡성으로 인함이다. 우선, 복잡한 다수의 구성원이 있는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간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합의를 기반으로 그 사회는 유지 될 수 있으며, 더 큰 사회를 이룰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바빌로니아와 로마 그리고 프랑스까지 성문법이라는 합의를 기반으로 큰 사회를 이루었다. 현대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헌법부터 조례 그리고 관습 등 많은 합의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합의중 하나가 일부일처제이다. (축첩제도 등 사회 지도층에 국한한 것은 서술하지 않겠다.)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소유의 개념으로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올바른 정의가 아닐 수 있으나, 사회를 유지 하기 위한 최선의 정의였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소유의 개념을 갖고 있으며, 공공재와 사유재를 구분한다. 이 공공재와 사유재를 가장 크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공동이 소유 했을 때, 그 대상의 가치가 유지 되느냐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공재인 공기와 물 등은 여럿이 소유한다고 했을 때 가치의 변화가 적거나 없다. 반면, 음식이나 공산품 등은 수량이 제한되어 있거나, 공동의 사용이 불가한 경우 그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사람은 관계에 있어서 여럿이 관계를 맺는 경우 그 관계의 충실하지 못하거나 관계 자체를 의심해 왔으며, 이는 그 관계 가치의 하락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상호간의 관계를 소유의 개념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사유제의 개념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폴리아모리가 아닌 모노아모리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고 본다.
이외에도 여럿 이유가 있겠지만,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이만 중략하고자 한다.
끝으로 정리하면, 사회에서 합의된 형태의 관계는 모노아모리이며, 현재 폴리아모리라는 형태의 사랑은 분명 다른 형태의 사랑이다. 물론, 절대적으로 틀린 관계의 형태는 아니지만 우리가 사회적으로 합의한 형태의 사랑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이 책을 보면서 불편했던 이유는 폴리아모리에서 오는 불편함이 아닌 분명 상대적으로 틀린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가 이루고 있는 사회를 도리어 틀림의 사회로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조금 더 다름을 이해시키고, 이러한 사랑도 충분히 현재 사회에서도 이해 받을 수 있는 사랑임을 이야기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