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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월든호수편

Books · 소급 기록 · 2020-09-02 읽음

· 헨리 데이빗 소로우월든

지금까지 여러 책을 읽어오면서,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고 읽기가 어려웠던 책이 몇 권 있었다. "총균쇠"가 대표적이었고, 지난번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그 책이 그랬다. 아마 이번에 읽은 "월든" 또한 읽기 어려웠던 책으로 내 기억속에 남을 것 같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각 챕터가 내게는 너무도 뻔한 플롯을 가지고 있었고, 말하고자 하는바를 너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는 내 생각과는 결이 달랐다. "월든" 또한 이러한 감상을 지울 수 없었다.

작가는 월든 호수에서의 생활한 경험을 책에서 그리고 있다. 그가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사람을 만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등등,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우리가 아는 유명한 프로그램 삼시세끼 같다고나 할까? 정확히는 TVN에서 같은 나영석 피디가 연출하고 소지섭과 박신혜가 출연한 "숲속의 작은 집"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해당 프로그램이 보여준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소박한 삶을 너무도 비싼 재료로 그리는 느낌이였다.

그가 그의 생활을 서술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월든 호수와 주변인을 서술하기 위해 사용한 언어는 우리들의 언어가 아닌, 여러 고전과 여러 현인들의 말과 시 그리고 그 자신의 고결한 신념으로 표현했다. 그가 하는 전원 생활의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를 끌어왔으며, 그가 본 자연을 표현하고자 미국 대문호의 시를 끌어왔다. 이러한 그의 책 속의 서술은 그 어떤 것보다 화려했으며, 유려했다. 하지만 도리어 이런 서술 방법이 정작 책을 읽고 그의 전원 생활을 공유 받고자 했던 나에게는 한 없는 불편함이었다. 글 속에서 전원의 여유나 자연의 편안함은 온데 간데 없었으며, 오로지 그의 유려한 글 솜씨 밖에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모순 때문인지, 책을 읽어가면서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고, 이 때문에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는게 어려웠다. 읽는게 어려운 것과는 별개로 담백하고 소박하게 썻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아마 요즘의 작가들이 이와 같은 글을 쓴다면 분명 그렇게 썻을 것이다.

19세기는 분명 산업화와 정복주의적 자연관이 널리 퍼졌던 시대였다. 그렇기에 이런 생태주의자의 목소리는 지성인으로써 낼 수 있는 비판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후대에 이르러 그 가치를 평가 받고 고전으로써 읽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이 책은 너무도 이상주의적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문명의 대부분의 이기는 정복주의적 자연관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탐험하고 개발하고 공부하며 깨우친 자연을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많은 것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현재의 생태주의적 관점 또한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현대적인 생태주의적 관점과 달리 작가가 피력하는 생태주의적 관점은 조선시대에 볼 수 있었던 유교적 자연관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서 욕심을 버린채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 한다.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삶이랄까? 이 같은 삶의 가치는 분명 시대를 초월한 이상적인 가치지만, 내 사견으로는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는 가치임이 분명해 보였다. 사람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살아간다. 이는 사람의 욕망이라는 감정에 기반하고 있으며, 욕망은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다. 작가가 꿈꾸는 세계는 모든 사람이 본능을 억제하고 이상적인 삶을 꿈꿔야 하지만 역사가 말해주 듯, 성공할 수 없는 이상이다.

책을 읽으며 개인적인 몇 가지 단상들을 통해서, 이 책이 더욱 아쉽게 느껴질 뿐이다. 솔직하고 소박하게 그의 생활을 서술했다면 좋은 전원 생활에 가이드가 되었을 텐데라는 감상이다. 물론 그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충분히 알지만, 그것이 전달되기 위해서 조금은 돌아갔으면 어땟을까 할 뿐이다. 마치 삼시세끼처럼 대단한 말과 멋진 시가 아닌, 정말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줬다면 좋은 탈출구로써 나도 동감하며 읽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