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금 당신은 숨을 쉬고 있다는 자각했는가?
대부분은 내가 묻기 전까지 숨을 쉰다고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숨이라는 것은 무의식 중에 수행되는 우리 몸의 생리 현상으로, 인지 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우리, '나'라는 존재도 비슷하게 인지하지 못하면 느낄 수 없는 숨과 같다.
결국 하나의 존재는 그 존재를 자각하는데서 시작한다. 그 유명한 문장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처럼말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나"를 자각했다. 그렇다면, 이제 정말 철학이 시작된다. 과연 "나"는 무엇이고,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같은 물음은 인간이 사유하게 된 시점부터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물음이며, 영원히 풀리지 않은 물음일 것이다. 이러한 물음을 테드창은 숨 속의 단편들을 통해 묻는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가상, 평행우주 등 존재에 대한 그의 물음은 끝이 없다.
일단 "나"라는 존재는 과연 온전한 "나"로써,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존재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 모두에게 묻는다면, 대부분은 그렇다고 생각 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걸 마시고 먹을지,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을 하는 것의 주체는 '나' 임으로 당연히 자유의지에 따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글을 쓰는 필자도 분명 필자의 의지대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니, 어쩜 멍청한 질문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읽은 책 '숨'의 제일 앞장에 자리한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을 되뇌어 보자, 주인공은 과거의 문으로 향했지만 미래는 바꿀 수 없었고. 밧줄공은 미래의 자신으로 인해서 과거의 자신이 성공하는 순환하는 생을 갖게 되었다. 이미 정해져있는 미래, 즉 우리는 정해져 있는 미래를 향해 갈 뿐 바꿀 수 있는 것을 없다는 것이 요지다.
결국 자유의지가 아닌 정해진 수순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일 뿐인 것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물음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존재에 특별성을 부여할 수 있느냐에 있다. 우리가 어떤 독립적인 객체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이 자유의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도 자유의 유무의 따라 계층과 신분을 달리 했으며, 이에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역사의 연속이었다.
우리 존재의 특별성을 부여하는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이었고, 흔들린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과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고, 바로 숨의 그 물음과 같이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는 우리 존재의 자유의지에 대한 의심이 시작 된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지에 대한 물음은 최근의 시간여행을 다루는 작품들에서 두드러진다. 과거에는 자유의지를 베이스로 인과관계에 오류를 지적했다면, 현재는 인과관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자유의지에 대한 물음을 제시한다. 전자가 백투더퓨처라면 후자는 테넷이랄까?
백투더퓨처를 봤다면, 주인공 마티가 과거에서 부모님을 잇지 못하자 몸이 살아지는 장면이 있다. 이를 우리는 할아버지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과거로 돌아가 할아버지를 해하였을때, 우리는 존재할 수 있는가? 그 물음에서 시작된 역설이다. 결국 이러한 역설이 성립을 하는 근원은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으며, 과거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 실재하는데, 존재할 수 없다는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역설을 해결해주는 이론이 바로 다중우주론이다.
다중우주론은 우리가 선택을 함에 따라 다양한 우주로 분화된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경우, 생성되는 미래는 우리가 온 우주가 아닌 새로운 우주를 형성하고, 할아버지 패러독스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 같은 다중우주론은 숨의 단편 중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작품에도 나와 있다. 이 경우는 양자 역학의 특징을 통해 분화되는 다중 우주를 이야기 한다.
이처럼 학자들은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 아래, 믿음과 모순되는 과학적 발견들을 설명하기 위해 더 다양한 이론들을 생각해냈다. 이는 어찌보면 종교가 해석하는 과학과 결이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종교적 믿음과 과학적인 갈등을 다루는 단편도 있으니, 작가도 그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리해서, 자유의지란 우리가 갖고 있는 존재의 특별함을 정의해주는 기반이지만, 현대에 와서 많은 과학적인 발견과 사고실험을 토대로 그 절대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과학을 넘어 철학적으로 많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났으며, 숨과 같이 문제를 제기하는 창작물 또한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 생애 과연 답을 알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있지만, 모르는 게 약이 될 수 도 있는 지식의 범위이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소견도 있다. 세상은 늘 상대적이며, 진실 또한 진리는 아니며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 글을 쓰는 필자는, 그리고 글을 읽고있는 독자도 과연 스스로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을까?
(이어서 글을 쓰고 싶지만, 더 쓰게 될 경우 너무 난해한 글이 될 것이 분명해 보여서 여기서 줄인다. 토론을 하면서 더 다양한 이론과 해석을 소개할 수 있길 바란다.)
참고 : 양자역학에 대한 단편적 지식....
- 이하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한 과학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양자역학에 대해서 단지 이해를 돕기 위해 짧은 풀이를 해주자면, (실상은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원자보다 작은 미시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을 설명하는 '역학'이다. 우리가 사는 거시 세계를 설명하는 '고전역학'과는 결을 달리한다.
이 '양자역학'은 최근 들어 많은 영화 소재로 차용되며, 다양한 창작물에 이론으로 사용되었다. 가볍게는 어벤져스와 엔트맨이 있다.
이러한 양자역학에서 포인트 중에 하나는, "양자, 즉 미세한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관측하기 전까지 정해지지 않는다." 이다.
이를 조금 자세히 설명하면, 양자의 상태는 파동함수로 정의 되는데, 파동함수의 값은 확률로 나올 뿐 정해진 값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양자를 관찰하면, 그때 그 상태가 정해진다.
마치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구절과 비슷하달까. (PS. 이 설명은 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일뿐, 정확한 개념은 아니다.)
다시 이야기 하자면, 이처럼 불확정성을 갖고 있는 양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세계는 하나가 아닌 확률로써 중첩되어 있고, 양자가 관측되면서 그 상태가 결정 될 때,
우주가 분화된다. 라는 것이 바로 다중우주론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 된 것이 바로 이 책에서 프리즘이다.
이러한 불확정성 때문에 또 다르게 발견한 것은 시간과 인과 관계의 절대성의 붕괴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로는 시간에 대해서는 인과성을 갖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시간의 방향은 한 방향으로 흐르고, 그 시간의 방향을 따라서 인과성이 성립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나오는 그 인과성의 원리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착각'하기 쉽다. 거시적으로는 이 표현이 맞고,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원리로 세상은 돌아간다. 하지만, 또 다시 미시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면, 시간은 절대성을 갖지 못한다. 미래의 결과가 과거의 원인을 바꾸는 일이 일어난다. 이를 역의 인과성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세상은 알면 알 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고 절대적인것은 없다라는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래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 자세이다. 당연한 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