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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다는 이름의 폭력,

Books · 소급 기록 · 2024-12-04 읽음

· 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때는 화요일 10시 30분, 핸드폰에서 요란한 알람이 울렸다.

토스뱅크, "원달러 환율 최고치"

아닌 밤중에 최고치라니, 무슨일이 터진건가? 그리고 옆으로 밀어 잠금해지한 폰 위로 뜬 건, 역사의 한 장면이 될 뉴스였다.

"계엄령", 역사책에서 본 뉴스를 이렇게 실시간으로 볼 줄이야.

아마 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읽고, 이런 서두일까 싶을 수 있지만,
내가 느낀 건, 우리가 다정하기에 벌어지는 폭력의 한 장면을 목격했기에가 아닐까 싶다.

작가는 말한다. 사람은 다정하기에 살아남았다고,
여기까지 읽었을 때, 필자는 이 책이 그 흔한 몇 년 전 유행한 우리를 위로하는 또 다른 "떡볶이가 먹고 싶어" 일 줄 알았다.
정이 없어진 사회에, "다정해야해!"라며 외치는 그런 책 있지 않던가?

그치만 책의 중반부를 넘어가며, 우리가 다정하기에, 그룹을 만들고 사회를 이루며, 배타적인 모습이 되어간다는 모습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았다.

책을 마치며, 작가는 또 말한다. 미국에서의 선거 이후, 책을 다시 고쳐썻다고,
"아, 해결책을 주어야 하겠다"

그렇다. 우리는 어쩜 위기에 직면한 순간 일 수도 있다.
바로 다정하기에 비롯 된 폭력, 나와 다름을 비 인간화하는 그 폭력.

"OO충" 이라는 단어가 바로 떠올랐다. 우리는 어느 순간, 타인을 비난하고 배척하는 말로 곤충을 합성하고는 하는 데,
이 얼마나 비 인간화의 대표적인 순간인가. 그 얼마나 폭력을 정당화 하는가,

책 읽기를 마치고 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렇게, 나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알고리즘적 분리주의가 만연하고, 그렇게 이뤄진 다정한 사람들의 폭력이 이뤄지는 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고 해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

우리는 유래 없는 네트워크의 발달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게 "취향추천"이라는 미명아래, 내가 봤던, 편협한 "취향"에 따라 알고리즘이 추천한 정보만, 취사 선택하여 보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도 사람 답게, 나의 바운더리를 정하고, 친구를 정하게 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란, 이런 친구를 많이 만들고,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기에, 누군가는 친구를 가르고, 상대방을 비 인간화 하기 시작했다.
그건 사람이 가진 다정함, 그것을 지키기 위한 옥시토신의 반작용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이런 과정은 "취향추천"에 따라 더 많은 분리된 그룹들을 만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여러 섬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정하다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옥시토신에 의해, 다정을 잃어가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처럼 본래 우리의 다정함으로, 살아남기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책의 마지막 챕터쯤과 같이, 나의 이웃으로, 동료로, 또 친구로 나와 함께하며, 옥시토신이 긋는 선 안쪽으로 모두를 받아드릴 수 있다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사람으로서, 또 어떨 때는 동물도 나와 같은 생명으로서 받아드린다면, 우리는 또 한번 다정함으로 뭉쳐 살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라며 이르고,
사랑만 해도 시간이 모자른 데라며, 외친다.

다정하자, 그리고 살아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