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안진진에 대한 글을 쓸까 했다.
제목도 지었었다. "가난은 로맨틱할 수 없다."
아무래도 안진진이 보여준 삶은 가난에서 비롯 되는 여러 불행의 모습의 단면을 보여줬고,
로맨틱하기보단 굉장히 현실적인 선택이 이뤄져야 하는, 그리고 결론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나영규를 선택했음에, 이러한 사랑의 이야기를 할까도 했다.
낭만의 김정우와 현실의 나영규랄까?
하지만, 문득 요즘의 "나"와 빗대어서 생각해보니, 안진진의 이모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이모의 삶은 어땠을까? 과연 책에서 대비되는 대로 안진진의 엄마와 반대의 행복한 삶이었을까?
나는 분명 이모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누구든 바라는 그런 행복한 삶을 살았고, 스스로도 그러한 행복을 잘 알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기에 누구보다 무용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행복한 말들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이러한 행복이 그녀를 그렇게 죽음으로 이끌었다 생각한다.
아마 혹자는, 그러한 행복함의 표현이 때로는 살려달라는 구조의 신호가 아닌가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표현은 어떠한 구조의 신호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행복의 표현이지 않았을까 한다.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행복과 무료함 그리고 생에 대한 고민을 생각해보니, 아마 이모는 그랬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3년 간 정신없이 바쁘게 시험을 준비하던 삶이 끝나자, 굉장히 무료해진 삶과 앞으로의 목적의식이 없어진 삶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삶은 내일을 기대하지 않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행복과는 또 다른 이유로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 같지 않다는 그러한 생각으로 인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행복하다는 동사가 아니고, 형용사로, 현재의 상태를 말한다.
진행 됨이 아니고, 어떠한 과정들을 통해 얻어낸 결과에 가깝다.
그렇기에 행복은 목표이자 끝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그와 반면에 있는 불행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살게 한다.
불행하다는 상태는 누구에게도 목표 일 수 없으며, 행복과 반대에 있는 삶의 출발 점이다.
불행은, 그 상태 자체로 행복으로 옮겨가야 하는 목표와 목적의식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불행의 한 켠에 자리잡은 희망이란 것은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렇기에 어쩜 불행한 안진진과 엄마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행복한 이모는 삶의 끝에 너무도 일찍 도착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게 아닐까?
그래서 아마 이 책의 제목이 모순이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마 나영규를 선택한 안진진의 삶도 이모를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생각이 들었다.
이모의 죽음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모의 삶을 잇고자 하는 안진진의 마음이 나영규를 택했지 않았을까?
안진진을 살게한 것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그런 불분명한 삶이었지만, 앞으로가 너무도 뻔한 삶으로, 그녀의 결혼 이후 변할 것이고, 아마 안진진은 이모와 같은 삶을 잇지 않을까 한다.